듀오가 만든 웨딩컨설팅 듀오웨드

다음 주에 아내는 이사한다. 아내만 이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사 정국을 주도하는 사람이 아내이기 때문이다. 아내는 이사 한 달 전부터 집 안을 정리체제로 운영한다. 아내는 집 안의 모든 물건을 딱 두 종류로 구분한다. 가져갈 물건과 버릴 물건으로.
아내는 잘 버리는 사람이다. 버릴 줄 아는 사람이다. 제대로 버리는 사람이라야 제대로 가질 수 있고 또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남편은 못 버리는 사람이다. 늘 물건에 연연해한다. 쓰지 않는 물건도 막상 버리려고 하면 아까워서 쩔쩔맨다. 가령 어제처럼 말이다.
퇴근하고 집으로 들어서는데 현관에 옷들이 쌓여 있다. “이게 다 뭐야?” “버리려는 거지.” 아내는 작업복 차림이다. 이사 때문에 짐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짐을 버리기 위해 이사를 하는 것 같다.
“안 돼. 이 옷 버리지 마.” “왜? 당신 이 옷 안 입잖아.” “내일 입을 거야.” “이거 겨울 옷인데?” “아무튼 내일 입을 거니까 버리지 마.” “십 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이면서 왜 못 버리게 해.” “십 년 만에 처음으로 입을 거니까!”
남편이 악을 써도 아내는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그뿐만 아니라 남편이 애지중지하는 책들을 잔뜩 들고 나온다. 대부분 오래된 책들이다. 세로쓰기판 세계문학전집과 삼중당 문고판 책들. 책장을 넘기면 금방이라도 활자가 바스러질 것 같은 책들.
책장에만 꽂아두고 더 이상 읽지 않는 책은 아내에게 책이 아니라 짐이다. 남편에게는 등이 휘더라도 지고 가야 할 삶의 무게일지 모르지만. 남편은 뒤돌아보는 사람이지만 아내는 앞을 보는 사람이다. 남편에게는 어제가 중요하겠지만 아내는 내일이 더 소중한 사람이다.
내일의 아내가 내어 놓는 책을 어제의 남편은 도로 들고 와 책장에 꽂는다. 남편의 눈에 나쓰메 소세키가 들어온다. “아무튼 인간 세상이란 참 살기 힘들다. 살기 힘든 게 아주 심해지면 이사를 하면 된다. 아무리 이사를 해도 살기 힘든 게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을 때 거기서 시가 나오고 그림이 생긴다.”
그러나 시나 그림은 나오지 않는다. 남편은 한숨만 나온다. 낡고 오래되고 쓸모 없어진 물건들이, 짐처럼 거추장스러워진 물건들이 꼭 자신을 닮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나쓰메 소세키를 책장에 꽂으며 아내에게 묻는다.
“이사 갈 때 나도 데려갈 거지?” “하는 거 봐서.” 잘 버리는 사람인 아내는 거만하게 웃는다. 역시 인간 세상은 살기 힘들다.


--------------------------------------------------------------------------------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기사 원문 보기] - 클릭하시면 해당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 중앙선데이 <남편은 모른다-아내의 이사> 2009년 8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