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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행복

남편은 아내가 언제 행복한지 모른다. 함께 사는 동안 아내가 한 번이라도 행복했는지 자신이 없다. 그러니 누군가 ‘아내를 행복하게 만드는 기술’에 대해 묻는다면 남편은 대략 난감할 것이다. 오히려 남편이 잘 아는 것은 ‘아내를 불행하게 만드는 기술’일 테니.
나는 아내의 행복에 대해 생각해본다.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아내의 행복한 표정을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앉아서 오래 생각하면 반드시 떠오르는 게 있다. 그것이 팔다리 저림이라 해도 말이다.
아내는 빵을 좋아한다. 일본 살 때 일요일 아침이면 나는 자전거를 타고 빵 가게에 갔다. 아내에게 줄 빵을 사서 집으로 돌아올 때 나는 힘껏 페달을 밟는다. 아침에 갓 구워낸 빵 냄새가 달아날까 봐, 따뜻함이 사라질까 봐 조급했던 것이다. 따뜻한 빵을 받아 든 아내는 콧구멍을 발름거리며 빵 냄새를 들이켠다. 그때 아내의 얼굴에 가득 번지던 흐뭇함처럼 보기 좋은 표정이 있을까?
아내는 남편 얼굴에 난 뾰루지를 좋아한다. 아내가 어찌나 좋아하는지 남편은 얼굴을 깨끗하게 씻을 때마다 괜히 아내에게 죄 짓는 심정이다. 아내는 남편 뾰루지만 보면 짜려고 덤벼든다. 남편이 아무리 반항해도 아내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다. 아내는 도망가는 남편을 붙잡아 넘어뜨린다. “내가 안 아프게 짜줄게.” 아내는 양손의 엄지를 사용해서 뾰루지를 짠다. “완전히 뿌리를 뽑아야 해.” 남편이 고통으로 몸부림칠수록 아내는 손가락에 더 힘을 준다. 그때 아내 얼굴에 일렁이던 사악한 웃음만큼 사랑스러운 표정이 있을까?
작년에 아내는 다큐멘터리 찍는 것을 배웠다. 아내는 함께 교육받는 동기들에 비해 나이도 많고 컴퓨터 작업도 서툴다고 투덜거렸다. 그러나 아내의 투덜거림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 특유의 흥분과 열정이 자랑처럼 반짝인다. 그런 흥분과 열정으로 아내는 조별 공동작업을 하고, 수료 과제를 촬영하고, 편집실에서 밤을 새웠다. 시사회가 열리는 날, 아내의 작품을 보면서 남편은 쑥스러워 하품을 하는 척했지만 실은 몇 번인가 눈물을 글썽인다. 그런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수줍은 웃음처럼 남편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이 있을까?
나는 ‘아내를 행복하게 만드는 기술’은 모른다. 아내가 언제 행복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안다. 자신이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는지. 그건 아내가 행복한 표정을 지었을 때다. 아내가 행복한 표정을 지을 때, 그때가 남편은 가장 행복하다.


--------------------------------------------------------------------------------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기사 원문 보기] - 클릭하시면 해당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 중앙선데이 <남편은 모른다. 아내의 행복> 2009년8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