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오가 만든 웨딩컨설팅 듀오웨드

아내는 비위가 약하다. 식사를 하다가 누군가 더러운 이야기를 꺼내면 아내는 더 이상 밥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다. 비위 강한 남편은 아내가 남긴 밥까지 다 먹지만. 아내의 비위는 장마철에 더 예민해진다. 장마가 시작되면 아내는 마치 임신한 여자처럼 군다. 입덧을 하는 것이다. 잠시 아내의 속이 울렁거린다. 아직 하늘은 맑고 기상청의 예보도 없지만 아내는 동중국해에서 북상하고 있는 장마전선을 온몸으로, 아니 비위로 감지한다.
“장마가 시작되려나 봐.”
아내는 콧구멍을 발름거린다. 아내는 공기 중에 비 냄새가 가득하다고 말한다. 바닥과 벽지에서, 욕실과 싱크대에서, 심지어 남편에게서도 비릿한 비 냄새가 난다면서 집안 곳곳을 킁킁거리며 다닌다. 아내는 수시로 입덧을 한다. 식사를 하다가도, 설거지를 하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자주 손으로 입을 가리고 울렁거리는 속을 가라앉힌다. 식성도 까다로워진다. 비빔국수가 먹고 싶다고 했다가 고추장 냄새 때문에 젓가락을 놓는다. 그렇게 좋아하던 치즈 케이크도 한입 먹더니 밀어낸다.
어제만 해도 그랬다. 총각김치를 우걱우걱 씹으며 늦은 저녁을 먹는 남편을 보더니 아내도 밥을 퍼서 식탁에 앉는다. 아니나 다를까, 한 술 떠 입에 넣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간다. 그러고는 한밤중에 또 죽이 먹고 싶다고 한다. 입덧하는 모든 아내의 남편처럼 나도 죽을 끓인다. 아내의 변덕 같은 죽을. 결국 아내는 숟가락도 안 든다.
비위는 상상력이 아닐까. 작고 희미한 단서나 기미를 잡아채어 점점 키우고 구체화시키고 폭발시키는 힘 말이다. 임신한 여자의 약한 비위 역시 상상력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그 상상력 때문에 생산하고 창조하고 출산하는 것은 아닐까.
비위 약한 아내의 예감처럼 새벽부터 폭우가 쏟아진다. 전국 곳곳에 200㎜ 안팎의 ‘물 폭탄’이 쏟아져 가옥이 침수되고 도로가 끊긴다. 폭우와 강풍으로 서울과 외곽을 잇는 주요 간선도로의 진입이 통제된다. 사람들은 바지를 걷고 가방을 이고 강을 건너듯 길을 건너간다. 불어난 한강 속으로 잠수교는 잠수한다. 국제선 항공기 3편과 국내선 항공기 69편이 결항한다.
퇴근시간 비위 강한 남편은 사무실 창가에 서서 물에 잠긴 강남대로를 본다. 대체 어떻게 퇴근해야 할지 난감하다. 그때 아내에게서 전화가 온다.
“나 족발 먹고 싶은데.” “뭐? 이 빗속에? 족발 싫어하잖아.” “지금 먹고 싶은 걸 어떡해. 그래서 안 사오겠다는 거야?” 어쩌면 아내는 정말 임신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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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득 -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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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SUNDAY <아내의 비위> 2009년 7월 19일